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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216 :: 쿠로히카게 - 아집





 연습이 끝나면 항상 어둠이 내려 있었다. 뜨거운 폐에 차게 식은 공기가 들어가는 감각은 독특했다. 그 독특한 감각이 일상으로 굳어지는 것을 히나타 쇼요는 기꺼워했다. 녹초가 될 법한 연습에도 항상 끝난 뒤에는 쪽빛 어둠을 바라보는 시선이 반짝였다. 뒤에 꼬리가 붙어 있었다면 좌우로 길게 흔들릴 모양새를 눈치채지 못한 사람은 없었다. 있다면 그건 분명히 멍청이였다. 오늘도 기분이 좋네, 히나타. 다나카의 말에 히나타가 힘껏 웃었다. 수고하셨습니다! 쩌렁한 울림에 덩달아 고개를 숙였다. 수고하셨습니다! 이어지는 목소리에 다나카가 웃었다. 뒤에서 츠키시마가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렸지만 못 들은 척 히나타의 머리를 쳤다. 멍청아, 목소리가 크잖아. 작지 않은 마찰음에 히나타가 뒷머리를 움켜쥐었다. 아프다고 입을 삐죽이는 모양새가 퍽 귀여웠다. 그랬다. 보통은 징그럽다는 수식어가 붙어야 하는 편이 옳았다. 같이 땀나게 운동하는 시커먼 사내자식이니까. 하지만 히나타 쇼요는 귀여웠다. 정확히는 카게야마 토비오의 눈에만 그렇게 보이는 듯 했다. 다시 말하자면, 


 카게야마 토비오는 히나타 쇼요를 좋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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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큐

쿠로오 테츠로 X 히나타 쇼요 X 카게야마 토비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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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게야마 토비오가 히나타 쇼요를 향해서 부적절-카게야마는 이 이외에 적당한 수식어를 찾지 못했다-한 감정을 갖게 된 시기는 정확하지 않았다. 감정이라는 것은 늘 그랬다. 특히나 카게야마 토비오에게는. 그가 머리를 쓰는 것은 단순히 배구에서만의 이야기였다. 그 외의 것에 그만큼의 시간을 소비할 필요성은 느낀 적이 없었다. 그래서 그가 감정이라는 것을 찾아 냈을 때에는 항상 불처럼 번진 후였다. 불처럼 번진 감정은 뒤늦게 달려들어 머릿속을 진탕으로 만들어 놨다. 지금까지의 카게야마 토비오는 동성에 대한 애정을 사고할 필요가 없었다. 그런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단순한 이유였지만 매우 명확한 이유였기에 그는 다른 반론을 생각한 적이 없었다. 그러니까, 과거에는 말이다. 카게야마 토비오는 히나타 쇼요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깨닫고 고민하기 시작했다. 자신이 왜 히나타 쇼요에게 그런 감정을 가지게 되었는 지, 자신은 왜 히나타 쇼요를 그렇게 대하고 싶은 건지, 자신은 왜 히나타 쇼요를 그렇게 보고 있는 건지, 자신은 왜, 


   "카게야마!"


 밝은 음성에 카게야마가 고개를 돌렸다. 노란 빛으로 반짝이는 시선이 부담스러웠다. 토스 올려줘! 손을 붕붕 흔드는 모양새가 철딱서니 없는 초등학생을 보는 것 같았다. 카게야마는 발끝의 방향을 달리했다. 히나타 쇼요가 있는 방향이었다. 빈 우유곽을 쓰레기통에 던져 넣으며 카게야마가 물었다. 점심은 다 먹었냐? 자신답지 않은 물음이다, 라고 생각했다. 히나타 또한 이상하다고 생각했는 지 묘한 시선으로 바라봤다. 그 시선이 왠지 불쾌해서 카게야마가 작은 머리통을 콱 움켜쥐었다. 푹신한 머리카락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왔다. 그 시선은 뭐야? 음산한 목소리에 히나타가 재빨리 고개를 저었다. 아무 것도 아닙니다요, 네. 잔뜩 수그러든 대답에 카게야마가 속으로 혀를 차며 손을 풀었다. 먼저 체육관으로 걸음을 옮기자 히나타가 뒤따라오며 투덜거렸다. 이상한 걸 물어본 카게야마의 잘못이라는 골자의 말이었지만 카게야마는 험악한 표정으로 돌아보는 대신 걸음만 빨리 했다. 그것도 모르는 히나타는 정말 제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는 지, 체육관에 도착하기 전까지 투덜거렸다. 






*          *          *






 어느 여름의 연습이 끝나갈 쯤에 손님이 찾아왔다. 쿠로오 테츠로였다. 네코마 고교의 3학년이었던 그는 아주 가끔 카라스노에 오고는 했다. 물론 그 혼자 오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언제나 전 주장인 사와무라 다이치와 동석했다. 그래서 사와무라가 들리기 때문에 들리는 것처럼 보였다. 체육관에 들어선 사와무라의 모습에 여기저기서 인사 소리가 터져나왔다. 그리고 히나타가 외쳤다. 전 캡틴! 히나타의 요상한 명칭에 사와무라는 이미 포기한 듯 싶었다. 사와무라의 옆에서 쿠로오가 웃었다. 


   "어이, 꼬맹이. 나는 눈에도 안 보이냐?"


 쿠로오의 시비조의 물음에 히나타가 와락 소리쳤다. 왜 또 왔어요? 무례한 물음이었지만 쿠로오는 신경쓰지 않았다.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히나타의 성격을 알고 있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쿠로오가 히나타의 머리를 눌렀다. 어쭈, 블로킹은 이제 좀 되나? 응? 이죽이는 목소리에 히나타의 비명이 누그러들었다. 브, 블로킹 알려주세요! 덥썩 미끼를 무는 모습이 정말 단순하기 그지 없었다. 카게야마가 히나타의 이름을 부르려는 순간이었다. 길게 찢어진 눈과 시선이 마주쳤다. 카게야마는 그 시선이 자신을 탐색하는 것 같다고 느꼈다. 마치, 코트에 상대편으로 섰을 때처럼. 시선의 의미를 찾느라 굳어버린 혀에 바람이 스치며 정신이 들었다. 히나타! 그의 부름에 히나타가 고개를 돌렸다. 무구한 얼굴에 의문이 드리워졌다. 연습, 하자. 그의 말에 히나타의 운동화가 움직였다. 그래! 별다른 이의 없이 붙어오는 모습에 카게야마는 속으로 숨을 내쉬었다. 다가오는 히나타를 바라보고 있던 시선이 쿠로오의 것과 마주쳤다. 카게야마의 시선을 마주한 쿠로오 테츠야가 가늘게 웃었다. 먹잇감을 채가려는 고양이의 미소였다. 






*          *          *






 쿠로오 테츠로는 그 이후에도 가끔씩 카라스노의 체육관에 들렸다. 항상 사와무라와 함께 들렸지만 카게야마는 그가 사와무라의 일정에 맞춰서 오는 것만은 아니라고 확신했다. 사와무라가 카라스노의 다른 졸업생과 방문할 때에는 쿠로오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는 오직 사와무라만을 대동해서 나타났고, 도망치려는 히나타에게 변함없이 인사를 받아내고, 블로킹을 알려준다는 명목으로 홀렸다. 히나타가 블로킹에 약한 것은 사실이었고, 쿠로오에게 블로킹을 연습받으면 도움이 된다는 것은 이미 증명된 사실이었다. 우카이 감독도 그가 히나타에게 블로킹을 처음 알려준다고 했을 때에는 묘한 시선으로 보더니 이제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쿠로오가 히나타에게 블로킹을 전수할 수록, 히나타가 블로킹을 잘 하게 될 수록. 카게야마는 무언가가 거슬렸다. 쿠로오가 체육관을 찾을 때에 미스가 나지는 않았지만 플레이가 거칠어 지는 것을 스스로가 느꼈다. 본인만 느꼈던 이질감이 겉으로 새어나오는 것은 순간이었고, 그 순간은 미스가 되었다. 토스 미스에 주변에서는 카게야마도 실수할 때가 다 있다고 웃었지만 카게야마는 따라 웃을 수가 없었다. 위로랍시고 괜찮다고 말하는 히나타를 쏘아보기 전에 쿠로오와 눈이 마주쳤다. 그 때까지 웃고 있던 쿠로오가 일순 표정을 거뒀다. 형태는 달랐지만 언젠가 보았던 시선이었다. 언제였는 지를 깨닫기 전에 쿠로오가 다시 능청스럽게 웃었다. 꼬맹아, 이번 주말에 시간 괜찮아? 쿠로오의 물음에 히나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와서 켄마랑 같이 놀래? 켄마도 오랜만에 보고 싶어하는 눈치던데. 쿠로오의 말에 히나타가 단박에 긍정의 대답을 내어놓았다. 자신을 향하지 않은 대화를 들으며 카게야마는 자신에게 던져지는 쿠로오의 시선을 마주하고 있었다. 


   "그럼 일요일 두시에 봐."


 그 말이 못처럼 박혔다. 카게야마는 그 말이 저에게 하는 것임을 깨달았다. 






*          *          *






 일요일의 날씨는 구름도 없이 맑았다. 가을이 무르익던 차라 공기도 선선했다. 차라리 비가 왔으면 히나타가 나가지 않았을까. 카게야마는 무의미한 조건을 달았다가 고개를 저었다. 쿠로오가 히나타를 만나기로 했던 장소 쯤은 확실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시간은 오후 한시 사십 팔분이었다. 그리고 카게야마의 앞에는 쿠로오가 서 있었다. 쿠로오가 여유롭게 웃었다. 눈가가 가늘게 접히며 휘어지는 미소를, 카게야마는 그 때서야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이야, 여기는 웬일이야? 능청스러운 물음에 카게야마가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왜 히나타한테 블로킹을 알려주는 겁니까.


   "당신은 네코마의 주장이었잖아요."

   "흐음, 제가 친절한 건 하루 이틀이 아니랍니다?"


 기가 차지도 않는 대답에 카게야마가 얼굴을 사정없이 찌푸렸다. 형편없이 일그러지는 모양새를 바라보던 쿠로오가 신나게 웃어댔다. 그리고 뚝, 웃음을 거뒀다. 숙였던 고개를 든 얼굴은 언제 웃었냐는 듯 차가웠다. 웃음기 없는 쿠로오의 표정에 소름끼쳤다. 반사적으로 물러나려는 발을 바닥에 눌러 버티고 섰다. 너는 왜 그걸 이제야 묻지? 쿠로오의 물음에 카게야마는 입술을 달싹였다. 하지만 카게야마가 답을 찾기도 전에 쿠로오가 먼저 답을 찾아서 내어놓았다. 그 꼬맹이가 욕심 나? 카게야마는 입을 닫았다. 쿠로오는 대답을 기다리지 않았다. 사실 기다릴 필요도 없었다. 그는 이미 사실을 알고 있었다. 아마 카게야마 본인보다 정확하게. 


   "지난 2년동안 아무런 반응이 없었으면서?"


 이제야? 소리 없이 덧붙인 물음 뒤로 쿠로오가 웃었다. 정확한 부분만 들쑤시는 물음에 카게야마는 입술을 꾹 다물었다. 얼굴이 형편없이 일그러졌지만 거기까지 신경이 미치지 못했다. 당신은. 입술을 물었던 자리에 잇자국이 남았다. 목소리에 감정이 치덕치덕 묻어 나오는 것조차 스스로 인지하지 못한 카게야마가 주먹을 쥐었다. 당신도 욕심내고 있잖아요.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고 외치는 말은 매끄럽지 못했고, 때문에 매섭지도 않았다. 어린 아이의 주먹보다도 아프지 않을 말에 쿠로오가 순순히 긍정했다. 물론 나도 그 꼬맹이를 욕심내고 있지. 하지만 따라붙는 시선은 순순하지 않았다. 네가 네 감정을 깨닫기 전부터 꾸준하게. 주먹을 움켜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반질반질한 시선에는 고저가 없었다. 왜. 카게야마는 수없이 제가 삼켰던 물음을 토해냈다. 그런데 왜, 


   "당신은 제가 히나타를 욕심내면 안된다는 시선으로 보는 겁니까."


 엉성한 형식이 지켜진 타당한 물음. 그것이 가여워서 쿠로오는 입술 끝을 올리다가 말았다. 눈 앞의 꼬맹이는 여전히 모르고 있었다. 켄마라면 뭐라고 했을까. 오랜 소꿉친구의 예상 답안을 상상하며 쿠로오 입을 열었다. 너, 꼬맹이를 생각하는게 아니라 영역 싸움으로 생각하고 있잖아. 날선 시선이 마주쳤다. 부릅뜬 눈은 헛점을 찔린 것 같기도 했고, 독을 마신 사람 같기도 했으며, 동시에 상처입은 사람의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쿠로오는 카게야마를 봐줄 생각따위는 추호도 없었다. 영역 싸움으로 생각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어? 쿠로오의 물음에 카게야마는 대답을 하지 못했다. 달싹이는 입술과 차오르는 숨으로 들썩이는 어깨를 바라보며 쿠로오는 눈이 뻑뻑하다고 느꼈다. 쿠로오는 카게야마의 행동이 언제부터 변했는 지 확실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 때 이미 쿠로오 테츠로가 히나타 쇼요에게 친애 이상의 감정을 느낀 이후였고, 그는 그것을 확실하게 인식하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카게야마 토비오는 올 여름의 어느 밤, 카라스노의 체육관을 찾았을 때부터 변하기 시작했다. 정확히는 자신이 그를 노골적으로 견제했던 그 날 부터, 카게야마 토비오는 변하기 시작했다. 그렇기 때문에 카게야마가 히나타를 향해 가진 감정이 어쩌면 진실로 세간에서 사랑이라 부르는 것일지라도, 쿠로오 테츠로는 그 행동을 영역 싸움이라고 정의할 수 있었다. 


   "그림자가 빛을 탐내면 자멸 밖에 없어."

   "─어둠이 빛을 탐내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는데요."


 그쯤에서 그만 두라는 온건한 대화는 결렬되었다. 이래서야 꼬맹이가 불쌍한데. 하지만 그 사실을 알려줄 생각이 없어서 혀 위에 소리로 올리지는 않았다. 쿠로오는 이맛살을 구긴 채로 고집을 피우는 적을 바라보며 웃었다. 어차피 빛과 양립되는 것은 어둠이다. 그림자는 빛이 있기에 만들어지는 것에 불과했다. 그걸 깨닫지 못하고 달려들면 남는 것은 말했다시피 자멸 뿐이다. 과연 이 주제 모르는 까마귀는 어떨까나. 끊어진 대화에 카게야마가 흘긋, 시간을 확인했다. 두시 삼분. 히나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쿠로오는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친절을 베풀기로 했다. 꼬맹이는 오지 않을거야. 그의 말에 카게야마가 고개를 돌렸다. 약속은 메일로 취소했으니까. 덧붙인 말에 카게야마가 걸음을 멈췄다. 오기로 뭉친 시선이 무섭게 쏘아졌다. 그러나 그런 것에 겁먹을 정도로 쿠로오의 성격은 심약하지 못했다. 


   "메일 쯤이라면,"

   "코트 위에서라면 네가 꼬맹이와 더 가깝겠지." 


 하지만 그 뿐일 거라는 말을 삼키며 쿠로오는 카게야마의 말을 끊었다. 카게야마는 말을 덧붙이지 않았다. 그저 몸을 돌려 그에게서 멀어질 뿐이었다. 고집스러운 뒷모습을 보며 쿠로오는 제가 너무했나, 하고 고개를 기울였지만 이내 생각을 지웠다. 영역 침범으로 발끈해서 주변을 살피지 않고 달려드는 까마귀에게는 이 정도가 적당했다. 그는 히나타 쇼요가 정말로 마음에 들었고, 카게야마 토비오를 정말로 쉽게 보지도 않았다. 그래서 일부러 도발을 했다. 켄마가 듣는다면 기분 나쁘다고 할 만큼 비겁한 플레이지만 상관 없었다. 정정당당한 것은 코트 위에서 룰을 지키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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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학년들 졸업 후 시점

문단순서가 시간순서와 좀 다름. 

내가 이걸 왜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