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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008 :: 살리모차 - touch 1

람테 2014. 10. 8. 22:54






 최근 들어 한참 주가를 올리고 있는 이가 있었다. 본래라면 한철 가벼운 가쉽으로 끝날 이야기였다. 신인 작가 중에 천치인 자가 있다. 이 짧은 가쉽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순식간에 몸을 불리고 커졌다. 처음에는 작품과 관련된 이야기만 돌았다면 소문은 점점 범위를 넓혀 그의 사생활까지 파고 들었다. 그가 누구와 침실을 공유했냐느니, 그의 섹스 취향이 독특하다느니, 하는 저속한 이야기까지 도는 와중이었다. 안토니오 살리에리가 소문의 그 천치를 만나게 된 것은. 그는 쭈그리고 앉아 물감을 고르고 있었다. 오래된 화방 안으로 기어 들어온 햇살이 부유하는 먼지와 함께 부시시하게 뜬 금발을 비췄다. 원하는 색을 짚어내는 손가락의 끝은 채 다 지워지지 않은 물감으로 얼룩덜룩했다. 며칠 잠들지 못했는지 눈가가 조금 거뭇했지만 표정은 더 없이 흥겨웠다. 입술이 아주 조금씩 달싹이며 작은 허밍음을 냈다. 옆에는 캔버스 가방이 벌어져 내용물이 그대로 드러났다. 크로키 북과 제대로 넣어지지 않은 콩테나 연필, 휴대용 수채화 물감 같은 것이 어질러져 있는 모습이 눈 앞의 남자가 어떤 생활을 할 지 짐작하게 했다. 살리에리는 그 자리에 서서 한참동안 소문의 천치를 내려다봤다. 그가 돌아볼 때까지. 물감을 다 고른 듯 그가 고개를 들었다-심지어 그는 물감을 고르는 동안 쭈그린 채로 단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다-. 말간 눈동자에 이채가 지나갔다. 


   이런, 제가 길을 막았군요!


 과장되게 벌떡 일어난 그는, 당연하게도, 저린 다리를 느끼며 휘청거렸다. 늘어진 나뭇가지마냥 휘엉청 거리며 빈약한 물감 진열장을 잡기 전에 살리에리는 그의 팔을 잡았다. 괜찮습니까. 잡힌 상대방은 말갛게 웃었다. 감사합니다, 무슈. 어린애 같은 미소였다. 제 자리에 서서 발을 몇 번 굴러보던 그는 늘어진 캔버스 가방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양 손 가득하게 들고 있던 물감이 우수수 떨어졌다. 그리고 그는 요란한 소리를 내며 떨어진 물감을 줍기 시작했다. 부산스러운 움직임에 살리에리는 얕은 숨을 내쉬고 허리를 굽혔다. 제 앞에 굴러와 있는 물감을 무더기로 집어 들자 눈 앞의 그가 다시 인사했다. 어어, 감사합니다. 그가 손을 뻗으려고 하기 전에 살리에리가 말했다. 


   계산대 앞까지 들어드리겠습니다. 


 그 손에는 더 이상 올라갈 곳이 없는 것 같군요. 살리에리의 말에 그는 기쁘게 웃었다. 얼굴 근육에서 무언가가 빠진 것처럼 실없이 잘 웃는 남자를 보며 살리에리는 먼저 걸음을 옮겼다. 계산대 위에 물감이 잔뜩 쌓였다. 이 정도면 아예 구성 세트를 다시 사는 것이 나아 보일 정도였다.  살리에리는 이제 그가 돈을 찾는 모습을 구경했다. 가격을 물어본 그는 옷에 달린 주머니를 다 뒤집고 번번한 주머니가 하나도 달리지 않은 캔버스 가방을 뒤지면서 돈을 찾았다. 문제는 그 뒤-사실 지금까지도 문제는 계속 일어났지만-에 벌어졌다. 1유로 25센트가 부족하네요, 무슈. 악의 없는 직원의 통보에 그의 표정이 당황으로 물들었다. 어, 잠시만요. 잠깐만, 돈이 더 있을텐데. 그가 다시 주머니와 캔버스 가방을 뒤지기 시작하는 모습을 보며 살리에리는 제 지갑에서 2유로를 꺼내 올렸다. 동전 소리에 그가 고개를 돌렸다. 그 시선을 무시하며 살리에리가 말했다. 


   물건을 포장해 주십시오. 


 직원은 그의 말에 계산을 마치고 물건을 비닐에 넣기 시작했다. 무슈? 옆에서 그를 부르는 목소리에 살리에리가 고개를 돌려 말했다. 우선 이 가게를 나가서 마저 해결하죠. 다음 손님이 기다리시지 않습니까. 살리에리의 말대로 뒤로 두어명이 기다리고 서 있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고 봉투를 집어들었다. 다행스럽게도 가게 문을 나설 때까지는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햇살 바로 아래에 드러난 얼굴은 앳되고, 어설픈 웃음으로 덮여 있었다. 그 표정에서 안토니오 살리에리는 예감했다. 자신의 2유로-정확히는 1유로 25센트-를 지불할 돈이 그에게 없다는 것을. 그가 말했다. 


   무슈, 지금은 제가 돈이 없지만 꼭 갚을게요. 제가, 그러니까 저희집에 같이 가시겠어요? 


 그 말에 살리에리의 시선이 묘하게 변하는 것을 느꼈는 지, 아니면 무표정한 그의 표정에 당황했는 지 남자가 횡설수설 말을 쏟아냈다. 제가 이상한 뜻으로 하는 말도 아니고요, 저 나쁜 짓 하는 사람도 아니고요, 그게 그러니까. 진짜 집에 돈이 있는데요. 당황하는 모습을 보며 살리에리는 느즈막하게 한숨을 내쉬며-물론 눈 앞의 남자는 제 말을 쏟아내느라 그것을 듣지도 못한 듯 했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안내하시죠. 살리에리의 말에 남자가 반색했다. 표정 변화가 참 뚜렷한 사람이다. 살리에리는 들뜬 걸음으로 앞서 걷기 시작하는 남자의 뒷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가쉽은 역시 믿을만한 것이 되지 못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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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R/살리모차?모차살리?/플로살리 미켈모차 기반/현대물 AU/화가모차